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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재활 아닌 일상생활"
전통적으로 장애인문제를 다루는 기본적인 입장은 장애인을 어떻게 ‘재활(rehabilitation)’시키는가에 있었다.
즉 장애인을 어떻게 치료ㆍ교육ㆍ훈련시켜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의 사회적 능력에 도달하게 할 것인가가 장애인복지정책과 실천에서 주된 관심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장애라는 것이 치료ㆍ교육ㆍ훈련으로 극복이 가능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장애인이 도달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보다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기 개성에 의해 일상적이고 다양한 삶을 누리는 데 있어 어떠한 환경을 구축해야 하는가, 장애인의 능력이 발휘되기 위해 어떠한 기본생활이 전제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아무리 훌륭한 직업재활훈련을 받았다 한들 일상생활과 이동,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그러한 직업적 능력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한국의 각종 장애인복지정책과 서비스들은 장애인에게 있어 부분적이고 특별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수하게 세팅된 공간에서 특수한 치료와 훈련과정을 거친 장애인들이 실제적으로는 그들을 맞을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지역사회에 내버려지고 마는 것이다.
최근 20~30년 간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문제는 장애인 당사자의 개인적 요인보다는 사회적 맥락에서 발생되는 문제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왔다.
즉, 문화ㆍ사회적 관계, 제도ㆍ환경적 요소에로 관심의 전환이 있어 왔다. 장애인 개인을 변화시키려는 개입방식보다는 그 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지원책의 마련을 핵심적인 과제로 보게 된 것이다.
장애인의 신체능력을 개선하거나 특수한 기능을 갖게 하거나 제한적이고 부분적인 것에 목표를 둔 반복된 훈련을 제공하는 데서 벗어나 장애인이 그 장애를 가진 채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과 지원방식이 무엇인가를 보다 비중 있게 설정하고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된 입장들이 담고 있는 공통적인 메시지는 지역사회중심의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생활, 환경의 개선 등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역할이 중요시된다. 치료와 훈련, 보호의 대상인 장애인은 대개의 경우 재활전문가의 결정과 통제를 받거나 피동적인 역할에 그친다.
사회는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보고 가족은 그를 과잉보호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장애인은 의존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구조에 살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의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주체성에 문제해결의 관건이 있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이러한 점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이다.
1970년대 미국 중증장애인들의 자조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자립생활은 재활서비스와는 성격이 다른 실천방안을 제시해 최근 세계적으로 유용한 전략으로 이해되고 있다.
경험을 공유한 동료간 지원, 활동보조서비스(personal assistance service), 이동서비스, 주택개조서비스 등이 장애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보다 유용하다고 보는 ‘자립생활’은 장애인의 정상적인 생활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며, 삶 전체에 관심을 가진다.
즉 자립생활의 관점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 해결에 맞춰진다. 장애인의 특수한 직업적 능력의 확보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장애인의 특수한 능력은 지역사회에서 보통의 사람이 누리는 일상적 생활이 전제된 후에 장애인 스스로가 선택하여 꾸며갈 과제일 뿐이다.
자립생활은 특히 그 동안 의존적이거나 폐쇄적인 삶을 살았던 중증 장애인에게 더욱 강력한 메시지로 부각되고 있다.
다시금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자. 지난해 우리나라 장애인계는 이른바 ‘직업재활법’을 놓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었다. 정책담당자, 장애인복지전문가, 장애인 당사자들이 중증장애인의 직업문제를 놓고 벌인 논란이다.
그 논란이 문제의 핵심에서 벗어났었다고 본다. 전통적인 재활패러다임에 머문 논의는 장애인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한적으로 제시할 수 밖에 없다.
중증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재활이 아니라 일상 생활이다.
방에 가두어져 하늘조차 못 보는 삶이 아니라, 샤워를 한 후 멋있게 단장하여 동네를 산책하고 영화관에 가며, 음식이 맛있다는 식당에서 막 나온 따뜻한 음식을 먹어보고, 시내의 컴퓨터 학원에서 엑셀을 배우는 일상적인 생활을 누리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직업훈련’이 아니다. ‘생활지원’이다. 그가 선택하는 ‘생활’이다. 이제 우리는 장애인의 ‘생활’을 이야기하자.
출처 :광주서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원문보기 글쓴이 : 가족(정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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