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은 바람직한 인간" 활동가로 다시 살다  
전문 활동보조인 고흥식 씨 인터뷰
[위드뉴스]     입력시간 : 2007. 03.14.


올해 47세인 그의 이력은 조금 특별하다. 장애인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2007년 대학 새내기가 된 사내. 흔히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지만 과감히 NGO과를 선택했다. 그의 이름은 고흥식, 한국에는 아직 생소한 직업인 '전문 활동보조인'이다. 전문 활동보조인이란 전문성을 갖고 직업적으로 중증장애인 활동보조를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일본에는 보편화되어 있는 전문 활동보조인은 한국에선 이제 초보 단계. 그런데 고흥식 씨는 어떤 계기로 전문 활동보조인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직접 만나 물어보기 위해 불쑥 집으로 찾아갔다.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사회과학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대학 입학을 축하합니다. NGO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전문 활동보조인의 길을 걷고 있는 고흥식씨 ⓒ위드뉴스


장애인들과 오랫동안 웃고 울며 알고 지냈어요. 하지만 그들에게 사실상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가는 많은 세월이 지나가도 몰랐어요. 내가 보고 싶은 겉 그림만 그렸을 뿐이었다고 할까요. 나중에 이걸 내가 깨달았을 때 지금 나의 삶이 과연 장애인 인권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의구심이 생겼지요.

작년에 NGO학이 이런 나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회복지의 관점이 아닌 인권의 관점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이에요. 달리 말하자면, 내 자신도 사회적 약자이지만 사회적 약자로서 장애인의 입장을 더 깊이 인식하면서 활동가로 살고 싶은 욕심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나요?

20여 년 전이었습니다. 당시 건강 문제로 불면과 체중 저하 등 신경증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그때 성당에 나가고, 신부님들 강의를 접하면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은 결과가 몸으로 반영되었다는 걸 자각했습니다. 인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가톨릭 청년단체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거기서 권병덕이란 친구를 만나게 되었지요.

이 친구는 경기도에 위치한 장애 공동체 시설에서 생활보조인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거길 방문하게 되었는데, 난생 처음 그렇게 많은 중증 장애인들을 만나보고 내심 놀랐어요. 곧 느낌이 바뀌었지요. '이것이 내가 원하는 길이다. 저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로. 그날 이후 시설에 눌러 살았어요.

가족에겐 시설에 들어간다고 말했나요?

시설에 장애인 생활보조하러 들어가는 것 자체를 가족들에겐 비밀로 했어요. 80년대에는 장애인과 함께 생활한다는 게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했지요. 게다가 시설에 들어갈 땐 '투신'한다는 마음이었으니 더욱 말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가족의 눈길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지인들이 대할 불편한 태도도 마음에 걸렸고요. 사람들은 보통 그러잖아요. 겉으로는 옳은 일을 한다고 격려하지만, 그들의 잣대로 본다면 '사회적 무능력자'이지요.

생활보조란 무엇인가요?

생활보조란 시설 생활 장애인들의 생활 전반을 보조하는 걸 의미해요. 활동보조와 비슷한 것 같아 보이지만 180도 다른 개념이지요. 활동보조가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 결정에 의한 것이라면, 생활보조는 시설장 및 관리자의 의도에 장애인의 욕구가 맞춰지는 것이거든요. 나는 시설에 상주하면서 시설의 생리에 맞춘, 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자원봉사자였던 셈이에요.

자발적이었다지만, 시설에서의 생활이 쉽지 않았을 같은데요?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내가 들어갈 땐 45명의 중증 장애인들이 있었지요. 매일 소·대변 보는 거 챙겨주고, 세면시키고, 취사하고, 식사하는 거 도와주고, 식사 후에는 농사 일, 창고 일 같은 이런 일반 농촌 생활을 했는데 ...(너무나 힘들었다는 표정)

게다가 처음 겪어보는 불결함이나 냄새에 적응하면서 노동에서 오는 극도의 피곤함을 견디기는 참 힘들었어요. 하지만 나는 마음을 정하고 들어갔기에 일주일, 한 달, 석 달이 지나면서 어느새 적응이 되었어요. 들어온 지 일주일만에 크게 몸살을 앓았던 것 빼고는 말이죠. (웃음) 하지만 좋은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온 사람들 중에 한 달도 안 돼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적응에 실패한 거지요.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은데요?

웃기는 일도 많았지만 가슴 아픈 일이 더 많아서 그런 걸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이런 일이 있었어요. 기철이란 스무 살 먹은 아인데 아주 폭력적이었지요. 시설에 들어오기 전에 부모님과 함께 살았는데 그땐 정신 지체가 없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집을 자주 비운 사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예요. 기철인 어머니 시신 옆에서 무려 열흘 동안이나 살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때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아예 얼이 나가버린 거지요.

시설에 들어온 지 얼마 뒤지 않은 때였어요. 지하 강당에서 미사를 진행 중인데 내 옆에 앉은 기철이가 갑자기 뺨을 후려갈기는 거예요. 기가 막혔는데, 선임자들이 말하기를 기철인 시설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라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뺨을 때린다고 하더군요. 소위 기를 잡는다면서. 오래된 기억이지만 맞았기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것 같아요.

마음이 아팠던 일이 많았다고 했는데, 가장 마음 아팠던 일이 있다면?

(한참동안 입 안에 담고 있는 기억을 끝내 내뱉지 않는다. 그만큼 고통스러웠다고 짐작될 뿐.) 다른 이야기 할까 해요. 시설에 있다 보면 부모가 자식 버리는 걸 더러 봐요. 우린 하루에 한 번씩 마당을 도는 운동을 했는데, 운동을 마치고 보니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나지 않겠어요. 소리를 따라 냇가로 가보았더니 스무 살 쯤 된 정신지체인이 똥 범벅이 된 채로 물가에 앉아 있더라고요.

부모가 밤 동안에 시설 근처 냇가에 버리고 간 거지요. 부모를 찾으려고 백방을 수소문해보고, 나중엔 지문을 떠서 신원조회까지 해봤지만 결국 찾질 못했어요. 이 사람의 지문이 경찰 데이터에 없었던 거예요. 우린 이 사람이 버려졌던 동네 이름을 따서 '일동'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함께 살았지요.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요?

시설에선 1년여 정도 있었고, 역곡 시설 등 여러 시설을 몇 년 동안 옮겨 다니다가 다시 사회에 돌아왔어요. 비디오 가게를 하면서 한 달에 한 두번 시설에 방문하여 자원봉사를 하는 비정기적 생활보조를 계속 하였지요. 내내 장애인과 함께 생활했던 날들이 다시 그리웠어요. 언젠가는 다시 장애인과 함께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거지요.

그러던 마침 오랫동안 장애인 운동을 한 후배를 만나 재가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당시 내겐 재가 장애인에 대한 정보가 아예 없었고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에요.

장애인 활동보조는 어디서 처음 시작을 했나요?

2004년 초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에 활동보조인 신청을 했어요. 용주 씨를 소개받았어요. 용주 씨는 시설 장애인과는 달리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부모와 함께 살고 공부도 하고 있었어요. 내겐 아주 신선한 모습이었어요. 항상 의존하는 장애인만 만나왔고, 그런 구조만이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시 용주 씨는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있어서 영어를 가르쳐달라고 해 영어를 가르치면서 같이 외출을 많이 다녔어요.

그동안 활동보조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애인은?

이윤호 씨예요. 목사가 생활인들을 강간하고 살해했던 김포 사랑의 집에 있다가 나온지라 사회성이 많이 부족해 순진했던 점이 안타깝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처음엔 의견을 조율하면서 서로 다툰 게 많았어요. 시설에 오래 몸담다 보니 내 위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것이 미안하고 아직도 마음에 걸려요.

1년여 지내오면서 인간적으로 많이 가까워졌어요. (이때 울린 핸드폰 소리. 이윤호 씨가 건 전화다. 통화가 끝나고 난 뒤) 윤호 씨를 내일 만나기로 했어요. 활동보조인서비스 자부담이 4만원이나 된다면서 죽겠다고 말하네요.

2006년부터는 증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에서 전문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특별한 일은 아니었어요. 평범하게 활동보조 서비스를 할 때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 정도예요. 코디네이트와 함께 중증장애인 이용자의 가정을 방문하여 필요한 게 뭔지 활동보조인의 입장에서 알아보러 다니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처하거나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게 전부이고요. 초보 활동보조인에게 장애인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교육을 시키고, 자원봉사자에겐 장애인 체험 교육을 한다던가 등등.

현재 활동보조인을 중단한 까닭은?

몸이 무거운 장애인을 드는 일을 오래하다 보니 팔의 인대가 늘어났어요. 요즘은 침을 맞고, 보호대를 착용하며 다녀요. 치료가 된 후 다시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하고 싶어요. 경제적인 이익은 사실상 없지요. 그러나 돈을 벌고자 활동보조인이 된 것이 아니니까요. 숨 막히는 경쟁사회에서 약간 벗어나 인간을 만나 그의 자립생활을 지지하면서 편안하게 숨 쉬며 산다는 건 중요한 의미잖아요.

장애인 당사자주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모든 인간은 자기 권리와 존엄성을 갖고 있어요. 모든 생각과 행동의 바탕에는 이 원칙이 있지요. 갈등이나 모순은 이 원칙이 없기 때문이에요. 당사자주의는 이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인생 계획은 있는가요?

글쎄, '이 일을 하다가 보면 나이가 더 들고 힘이 달리면 내 한 몸을 의탁할 수 있는 조용한 곳을 찾지 않을까?', 전에는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달라요. (웃음) NGO과에서 배우고 있는 이론과 내 문제의식을 실천으로 옮겨야 되지 않을까요.

작은 능력이라도 사용할 여건이 앞으로 계속 생긴다면 어릴 적부터 생각해봤던 '바람직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인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이중 하나이고요.


이훈희 기자 bara@with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