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휘, 지금 등장! 아무 때나 나오지 말고 박자를 잘 맞춰서! 밝게 웃어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있는 기획사 ‘DnG 스타’의 연습실. 문을 열자마자 ‘페임’의 경쾌한 노래 소리와 연출자의 구령에 맞춰 춤동작 연습에 한창인 연기자들의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군무의 중심에 선 연기자는 강민휘(28)씨. 지난 2005년 개봉됐던 박흥식 감독, 문소리 주연의 영화 ‘사랑해 말순씨’로 데뷔한 국내 최초의 다운증후군 배우다.

연습 중인 작품은 오는 28, 29일 공연될 창작 뮤지컬 ‘슈퍼스타’. 여기서 그는 최고의 댄스가수를 꿈꾸는 ‘민휘’역을 맡았다. ‘슈퍼스타’의 피날레 부분에 등장하는 ‘페임’ 군무는 그가 동료 출연자인 김아람씨와 무대 중앙에서 멋진 호흡을 선보여야 하는 중요한 장면이다. 무대로 등장하는 타이밍을 놓쳐서 연출자로부터 지적 받았던 그는 두번째 연습에선 파트너의 손을 잡고 춤추다가 허리를 받쳐주는 끝동작까지 깔끔하게 해냈다.

출연진 전원의 만족스러운 박수소리와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하며 숨을 고르던 그의 얼굴에는 더이상 밝을 수는 없을 것 같은 환한 웃음이 가득했다. “뮤지컬이 제일 좋아요. 어렸을 때 HOT를 좋아했는데, 가수나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다운증후군을 가진 강민휘씨와 긴 대화를 나누기는 솔직히 쉽지 않았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을 알아 듣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질문을 비교적 정확하게 이해했고, 짧은 문장으로나마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힘든 건 별로 없어요.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긴 대사도 넓은 마음을 받아들이면 다 외워져요.”

‘슈퍼스타’의 기획자인 DnG스타의 김은경 대표는 “민휘에겐 ‘못한다’는 말 자체가 없다”면서 “사회성이 굉장히 좋고 웃는 모습과 몸동작이 자연스러워서 타고난 연기자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래도 왜 힘든 점이 없을까. ‘슈퍼스타’의 공동기획자이자 연출·극본·음악 및 안무감독·출연 등 1인 6역을 담당하고 있는 곽유림(제이기획 대표)씨는 “민휘 등 장애 배우들이 일반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선 조금 과장해 백만번 정도는 미리 연습을 해야 한다”면서 “민휘 경우엔 뮤지컬 배우로서 제대로 설 수 있도록 약 80% 정도 수준까지는 기량을 끌어올린 것 같다”고 말했다.

강민휘씨가 ‘국내 첫 다운증후군 배우’로 사회적인 관심을 끈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를 만나기 전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그가 지금도 직업배우로 활동하고 있는가였다. 장애 배우란 한때의 화젯거리나 홍보마케팅의 수단에 머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보다 좋은 프로 배우가 되기 위해 지금도 꾸준히 자신이 목표로 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사랑해 말순씨’이후 TV 드라마 ‘안녕하세요 하나님’ ,‘피아노가 있는 풍경’‘달자의 봄’ 등에 카메오 및 비중 있는 단역으로 출연했고 거리극 ‘헬로! 춘향’과 연극 ‘날개없는 천사들’ 등에도 출연했다.

CF와 드라마로 얼굴을 알린 연기자 서단비를 비롯해 DnG스타 소속 배우들과 함께 매달 군부대, 장애 시설, 노인 복지 시설 등을 찾아다며 사랑을 나누는 봉사공연에도 빠지지 않았다. 뮤지컬 ‘슈퍼스타’에선 주연급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 그대로 출연해 연기, 노래, 춤은 물론 플루트연주까지 선보여야 하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빠르면 올해중 새 영화에 출연할 계획도 갖고 있다.

부산 태생인 강민휘씨는 어린시절부터 끼가 넘치는 아이였다. 그의 부모는 다운증후군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특수학교 대신 일반학교로 진학시켜 보통 아이들과 섞여 지내도록 교육했고, 남들보다 배우는 속도는 조금 느려도 밝은 성품을 지닌 그는 학교생활을 어렵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강민휘씨는 “고등학교 땐 아이들과 학교 땡땡이를 치고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가 아버지로부터 매를 맞은 적도 있다”며 웃었다.

노래와 연기에 대한 그의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천안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재학때 지도교수님이었다. 교수 추천으로 DnG스타에 발탁된 그는 마침 장애배우를 찾던 박흥식 감독의 눈에 들어 오디션을 8번이나 거친 끝에 영화 ‘사랑해 말순씨’에 출연하게 됐다.

강민휘씨는 영화 출연 이후 부모와 떨어져 서울에서 생활해오고 있다. 2년 전부터 그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김은경 대표는 “민휘는 모든 기획사의 가장 이상적인 배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는 “세상에서 민휘가 가장 좋아하는 게 먹는 것인데, 먹기와 연기하기 중 하나만 고르라면 두말없이 후자를 선택한다”면서 “좋은 작품을 통해 세계무대에도 내보내고 싶을 정도로 재능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영화 ‘제 8요일’에서 순진무구한 캐릭터를 연기해 전세계 관객을 감동시켰던 다운증후군 배우 파스칼 뒤켄 못지않은 배우가 될 수 있는 재목이란 것이다. “남다른 사랑과 관심으로 여기까지 성장해온 민휘가 자기 안에 많은 사랑과 기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 사회의 희망이 되고 있는 듯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경제적인 독립은 아직 멀었다. 영화 출연하고 받은 돈이 400만원. 간간이 방송 드라마에도 출연했지만 돈을 모아놓을 정도는 아니다.

강민휘씨의 현재 꿈은 액션배우가 되는 것.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카리스마 있는 배우”라고 답했다. “주인공 연기를 하고 싶어요. 특히 액션영화 주인공이요. 요즘 매일 발차기, 권투 연습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눈은 자신감으로 반짝거렸다.

오애리기자 aeri@ 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