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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4-23 09:23
시각장애 뉴욕주지사의 분투
 글쓴이 : 참샘
조회 : 1,396  

일정·현안 등 업무 하나하나 녹음해 들어

미국 뉴욕 주지사의 고위 보좌관들은 퇴근시간이 임박하면 전화에 대고 녹음을 시작한다. 주지사의 다음날 일정과 만날 사람, 복잡한 현안들을 건당 5분씩 녹음한다. 그러면 시각장애인인 데이비드 패터슨(Paterson·53·사진 오른쪽) 주지사가 잠자기 전에 집에서 녹음을 듣기 시작한다.

패터슨 주지사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어제는 각각 5분짜리 메시지가 43개(총 215분)나 녹음돼 있어, 오전 1시까지 들었지만 다 못 들었다"고 말했다. 보좌관들은 이 전화를 '배트폰(Batphone)'이라고 부른다.

NYT는 21일 패터슨 주지사가 신체 장애를 딛고 복잡한 업무를 수행하려고 애쓴다고 보도했다. 부지사였던 패터슨은 지난달 17일 엘리엇 스피처(Spitzer) 당시 주지사가 성(性)매매 스캔들로 사임하자 주지사가 됐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으로 컬럼비아대를 나온 그는 태어날 때부터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 눈도 색깔과 물체의 대략적인 모습만 식별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미국 언론은 그의 장애를 '법적 시각장애인(legally blind)'이라고 표현한다.

패터슨은 미 역사상 첫 시각장애인 주지사다. NYT는 그가 자신의 ''역사적 위치'를 충분히 인식해, 정상인에 뒤지지 않는 업무수행 능력을 보이려고 애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각장애에도 불구하고, 지팡이를 쓰지 않는다. 20여년 동안 드나들었던 주정부 청사 곳곳을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지난주에는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始球)했다. 1999년 뉴욕시 마라톤대회에서 완주한 경험도 있다.

패터슨은 연설 때 프롬프터(promptor)를 읽을 수 없어, 보좌관들이 미리 녹음해 둔 내용을 몇 번씩 들어 기억한 뒤 연설한다. 그는"전문을 외워서 연설해야 해 긴장이 된다"고 말했다. 분량이 많은 서류나 책을 언급해가며 말해야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들려주는 특별한 녹음기를 이용한다. 패터슨 주지사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할 때 상대가 누구인지 귀에 속삭이지 말고 일상적인 목소리로 얘기해 달라고 측근들에게 주문한다. 그게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뉴욕=김기훈 특파원 khkim@chosun.com]